저들에불을놓아

저들에불을놓아

정태춘박은옥 0 443
정태춘.박은옥
저 들에 불을 놓아
그 연기 들판 가득히
낮은 논둑길 따라
번져 가누나
노을도 없이 해는
서편 먼산 너머로
기울고
흩어진 지푸라기
작은 불꽃들이
매운 연기 속에
가물가물
눈물 자꾸 흘러 내리는
저 늙은 농부의 얼굴에
떨며 흔들리는 불꽃들이
춤을 추누나
초겨울 가랑비에
젖은 볏짚
낫으로 그러모아
마른 짚단에 성냥 그어
여기 저기 불붙인다
연기만큼이나 안개가
들판 가득히 피어오르고
그 중 낮은 논배미
불꽃 당긴 짚더미
낫으로 이리저리
헤집으며
뜨거운 짚단 불로
마지막 담배 붙여 물고
젖은 논바닥 깊이
그 뜨거운 낫을 꽂는다
어두워가는
안개 들판 너머
자욱한 연기 깔리는
그 너머
열나흘 둥근 달이
불끈 떠오르고
그 달빛이
고향 마을 비출 때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소작 논배미엔
짚 더미마다 훨훨
불꽃 높이 솟아오른다
희뿌연 달빛 들판에
불기둥이 되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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