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간다

건너간다

정태춘박은옥 0 468
정태춘 박은옥
강물 위로 노을만
잿빛 연무 너머로
번지고
노을 속으로 시내버스가
그 긴긴 다리 위
아 흐르지 않는
강을 건너
아 지루하게 불안하게
여인들과 노인과
말 없는 사내들
그들을 모두 태우고
건넌다
아무도 서로
쳐다보지 않고
그저 창 밖만 바라볼 뿐
흔들리는 대로 눈감고
라디오 소리에도 귀막고
아 검은 물결 강을 건너
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
깊은 잠에 빠진
제복의 아이들
그들도 태우고 건넌다
다음 정거장은 어디오
이 버스는 지금
어디로 가오
저 무너지는 교각들
하나 둘 건너
천박한 한 시대를
지나간다
명랑한 노랫소리
귀에 아직 가물거리오
컬러 신문지들이
눈에 아직 어른거리오
국산 자동차들이
앞 뒤로 꼬리를 물고
아 노쇠한 한강을
건너간다
휘청거리는 사람들
가득 태우고
이 고단한 세기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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