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스케치

엘에이스케치

정태춘 0 352
정태춘
해는 기울고
한낮 더위도 식어
아드모어 공원 주차장
벤치에는
시카노들이 둘러앉아
카드를 돌리고
그 어느 건물보다도
높은 가로수
빗자루 나무 꼭대기
잎사귀에
석양이 걸릴 때
길 옆 담벼락
그늘에 기대어 졸던
노랑머리의
실업자들이
구부정하게 일어나
동냥 그릇을
흔들어댄다
커다란 콜라
종이컵 안엔
몇 개의 쿼터
다임 니켈
남쪽 빈민가
흑인촌 담벼락마다
온통 크고 작은
알파벳 낙서들
아직 따가운
저녁 햇살과
검은 노인들
고요한 침묵만이
음 프리웨이
잡초 비탈에도
시원한 물줄기의
스프링쿨러
물 젖은 엉겅퀴
기다란 줄기
캠리 차창 밖으로
스쳐가고
은밀한 비벌리 힐스
오르는 길목
티끌 먼지 하나 없는
로데오 거리
투명한 쇼윈도 안엔
자본보다도 권위적인
아 첨단의 패션
LA 인터내셔널
에어포트 나오다
원유 퍼 올리는
두레박들을 봤지
붉은 산등성이
여기 저기
이리 끄덕 저리 끄덕
노을빛 함께
퍼올리는 철골들
어둠 깃들어
텅 빈 다운타운
커다란 박스들과
후진 텐트와 노숙자들
길 가 건물 아래
줄줄이 자리
펴고 누워
빌딩 사이 초저녁
별을 기다리고
그림 같은 교외
주택가 언덕 길 가
창문마다 아늑한 불빛
인적없는 초저녁
뽀얀 가로등
그 너머로
초승달이 먼저 뜬다
마켓 앞에서
식수를 받는 사람들
리쿼에서 개피
담배를 사는 사람들
버거킹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사람들
아아
아메리카 사람들
캘리포니아의
밤은 깊어가고
불 밝은 이층
한국 기원
코리아 타운
웨스트 에잇스
스트리트
코메리칸 오피스
주차장 긴 철문이
잠길 때
길 건너 초라한
아파트 어느 골목에서
LA 한 밤의
정적을 깬다
백인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미국에 와서
백인들을
잘 못 보겠어
한국 관광객
질겁에 간
떨어지는 총소리
따당 따당땅
따당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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