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

백구

양희은 0 321
양희은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집에 살던 백구
해마다 봄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 낳았지
어느해에 가을엔가
강아지를 낳다가
가엾은 우리 백구는
그만 쓰러져 버렸지
나하고 아빠 둘이서
백구를 품에 안고
학교앞의 동물병원에
조심스레 찾아갔었지
무서운 가죽끈에
입을 꽁꽁 묶인채
슬픈듯이 나만
빤히 쳐다봐
울음이
터질것 같았지
하얀옷의 의사 선생님
아픈주사 놓으시는데
가엾은 우리 백구는
너무 너무 아팠었나봐
주사를 채다 맞기전
문밖으로 달아나
어디가는 거니 백구는
가는길도 모르잖아
긴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음음 음음 음음음음
학교문을 지켜 주시는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우리 백구 못 봤느냐고
다급하게 물어 봤더니
웬 하얀개가 와서
쓰다듬어 달라길래
머리털을 쓸어줬더니
저리로 가더구나
토끼장이 있는 뒤뜰엔
아무것도 뵈지 않았고
운동장에 노는 아이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줄넘기를 하는 아이
팔방하는 아이들아
우리 백구 어디 있는지
알면 가리켜 주려마
학교 문을 나서려는데
어느 아주머니 한분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혼잣말로 하는 말씀이
웬 하얀개 한마리
길을 건너가려다
커다란 차에 치여서
그만
긴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음음 음음 음음음음
백구를 안고 돌아와
뒷동산에 헤매이다가
빨갛게 핀 맨드라미꽃
그곁에 묻어 주었지
그날밤엔 꿈을 꿨어
눈이 내리는 꿈을
철 이른 흰무늬 빗속에
소복소복 쌓이던 꿈을
긴다리에 새하얀 백구
음음음 음음 음음음음
내가 아주 어릴때에
같이 살던 백구는
나만 보면 괜히
으르렁하고
심술을 부렸지
나나나나나 나나나 나나
음음음 음음 음음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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