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이씨

서울역이씨

정태춘박은옥 0 179
정태춘 박은옥
서울역 신관
유리 건물 아래
바람 메마른데
그 계단 아래
차가운 돌 벤치 위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 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이름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예약도 티켓도
한 장 없이
떠날 수 있구나
마지막 객차 빈자리에
깊이 파묻혀
어느 봄날 누군가의
빗자루에 쓸려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모던한 투명
빌딩 현관 앞의
바람 살을 에이는데
지하철 어둔
돌계단 구석에서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 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바코드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햇살 빛나는 철로
미끄러져 빠져나간다
통곡같은
기적소리도 없이
다만 조용히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에 눈처럼
그 눈물 처럼
사라져 주듯이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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