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야기(별들의고향)

겨울이야기(별들의고향)

이장희 0 323
이장희
제 연인의 이름은
경아였습니다
나는 언제든 경아가
아이스크림 먹는 것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경아의
화난 표정을
본 적이 있을까요
경아는
언제든 저를 보면
유충처럼
하얗게 웃었습니다
언젠가 저는
경아의 웃음을 보며
얼핏 그 애가
치약거품을
물고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습니다
부드럽고 상냥한
아이스크림을 핥는
풍요한 그 애의 눈빛을
보고 싶다는
나의 자그마한 소망은
이상하게도
추위를 잘 타는
그 애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가 만난것은
이른 겨울이었고
우리가 헤어진것은
늦은 겨울이었으니
우리는 발가벗은
두 나목처럼
온통 겨울에 열린
쓸쓸한 파시장을
종일토록 헤매인
두 마리의 길잃은
오리새끼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거리는 얼어붙어
쌩쌩이며
찬 회색의 겨울바람을
겨우내내 불어재꼈으나
난 여늬때의 겨울처럼
발이 시려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경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겨울이건
언제든 추워하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따스한 봄이라는 것은
기차를 타고가서
저 이름모를 역에
내렸을 때나
맞을 수 있는
요원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는
빙하가 깔린 시베리아의
역사에서 만난
길잃은 한 쌍의
피난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열아홉살의
뜨거운 체온뿐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그 외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그 겨울을
춥지않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체온엔
경아의 체온이
경아의 체온엔
나의 체온이 합쳐져서
그 주위만큼의 추위를
녹였기 때문입니다
경아는 내게 너무
황홀한 여인이었습니다
경아는 그 긴 겨울의
골목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외투도 없이 내 곁을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자
우리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헤어졌습니다
그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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